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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헤겔의 절대정신

by 지며리 2022. 3.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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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가 관념론의 창시자로서 인식의 전환을 제시한 뒤 피히테는 칸트 이론을 수용하는 가운데 세계를 나와 내가 아닌 것의 관계를 통해서 파악하려는 자아 이론을 주장하고, 뒤이어 게오르크 헤겔은 독일을 관념론을 완성시킵니다.

 

 

헤겔의 삶

 

헤겔은 남부 독일을 슈투트가르트에서 1770년에 태어났는데, 그의 아버지는 재무 관리를 보는 사람이었습니다. 헤겔은 1788년 대학 공부를 튀빙겐 신학교에서 신학으로 시작하는데, 이 시기는 그에게 많은 의미가 있습니다. 이때 헤겔은 독일의 시인 프리드리히 횔덜린과 철학자 프리드리히 셸링을 만나게 되는데, 이들은 삼총사로 불릴 정도로 절친한 사이로 가까워집니다. 튀빙겐 삼총사는 1789년에 일어난 프랑스혁명에 열광적인 찬사를 보내면서 함께 혁명을 위해 일할 것을 맹세하지만, 혁명의 열기가 식자 이들의 태도에도 변화가 찾아옵니다. 헤겔은 셸링과 나중에 학문적 경쟁으로 인해 적대 관계가 됩니다. 헤겔에게 많은 영향을 준 횔덜린은 나중에 정신 이상으로 병원에 수감되면서 가까웠던 세 친구는 서로 다른 길을 가게 됩니다. 당시 지식인들 대부분이 그랬던 것처럼 헤겔은 생업을 가정교사로 출발해서 1800년에 예나대학에 이미 가 있던 셸링의 도움으로 강의를 하게 됩니다. 예나대학 시절 그의 대표 저서이자 셸링과의 관계가 끊어지는 직접적인 동기가 되는 <정신현상학>을 출판합니다. 1806년에 예나는 나폴레옹에게 점령되었고 헤겔은 예나를 떠났습니다. 헤겔은 나폴레옹을 인간화된 세계정신으로 표현하는데, 이 세계 절대정신의 문제는 헤겔 철학의 중심 주제입니다. 그 뒤 헤겔은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잠시 철학을 강의하고 1818년 피히테의 후임으로 베를린대학으로 옮겨서 법철학과 역사 철학을 강의합니다. 베를린대학은 여러 가지 면에서 독일을 대표하는 대학으로 이곳에서의 강의는 그에게 커다란 명성과 권위를 가져다줍니다. 또 수많은 영향력 있는 제자를 길러냄으로써 명실공히 철학과 문화계의 지배자가 됩니다. 헤겔은 명성이 한창 높을 때, 당시 유행하던 콜레라로 1831년에 세상을 떠납니다.

 

 

변증법

 

헤겔은 관념주의자로서 칸트주의자지만, 가장 강력한 칸트 철학의 비판자이기도 합니다. 헤겔은 칸트 이론의 불완전함을 비판하면서 절대적 관념론을 체계화시킵니다. 헤겔은 자신의 철학을 체계화하기 위해 인간이 지니는 사고의 형식을 먼저 비판적으로 검토할 필요를 느꼈고, 그런 이유로 논리학의 확립에 우선적으로 힘을 기울였습니다. 여기에서 헤겔은 변증법이라고 불리는 유망한 법칙성을 제시합니다. 변증법이라는 용어를 헤겔이 처음 사용한 것은 아닙니다. 변증법은 본래 담화하는 방법이라는 뜻으로 플라톤은 이를 관념을 인식하는 방법으로 생각했고, 칸트는 위선적인 철학이라고 혹평했습니다. 변증법은 꼭 필요한 경험과 직관적인 이해 없이 이성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변증법은 헤겔에 이르러서 사고의 본질에 이미 들어 있는 법칙성 자체라고 새롭게 규정됩니다. 다시 말해 변증법이란 사고의 본질과 현실의 근본이 갖고 있는 법칙이라는 뜻입니다. 이렇게 볼 때 칸트의 입장에서는 변증법이란 자신이 말하는 순수 이성의 지나친 월권 행사가 되지만, 헤겔에게는 연금술 같은 발견으로 많은 철학자가 풀지 못한 모순을 해결할 수 있게 합니다. 헤겔은 발전하는 사물과 변화하는 사건의 모습을 설명할 수 있는 논리학을 추구하면서 변증법을 통해서 새로운 논리학을 발전시킵니다. 이 변증법은 대립적 관계를 통해서 발전적 성과를 이루어 내는 세 단계의 과정입니다. 모든 주장은 그 논제 자체에 이미 이 논제에 모순되는 대립 주장을 갖고 있으며, 이들은 다시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지양되어서 하나의 통일된 종합을 이루어 냅니다. 지양하는 것은 이전의 것이 갖는 특징을 보존하면서 동시에 전혀 다른 새로운 성질을 갖게 됩니다. 먼저 나온 주장과 이에 관한 모순된 주장이 갖는 부분적 진리는 모두 지양되어 종합 속에 보존되면서 하나의 통일체를 이룹니다. 이 통일체는 다시 대립을 통해서 변증법 운동을 계속하는데, 바로 이 운동 과정이 정반합 운동입니다. 이러한 변증법 운동은 헤겔에 있어서 정신적 작용의 결과이며, 한 단계 높은 이성적이고 반성적인 운동입니다.

 

 

절대정신

 

헤겔은 이러한 변증법의 논리를 역사의 발전을 설명하는데 응용합니다. 그에게 있어서 현상은 우연히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거대하고 체계적인 시스템이 자신을 펼쳐가는 필연적인 과정입니다. 역사는 정신이 목적을 가지고 이미 장치된 스스로에 관한 기억을 표현해내는 것입니다. 헤겔 철학에서 정신은 자기 자신의 주체이면서 동시에 실체로 인식합니다. 즉 정신은 세계의 실체와 같고 세계는 절대정신이 만들어 낸 결과물이라는 것입니다. 헤겔은 역사적인 사건의 주인공이었던 사람의 행동에서 세계정신이 실현되는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헤겔은 유럽을 뒤흔든 나폴레옹의 모습에서 세계정신이 인간화되어 세계의 역사로 실현되는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헤겔은 개인의 행복은 역사에서 중요한 문제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의 행복은 희생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에 따르면 세계의 역사는 절대정신의 목적 있는 자기실현이므로 또한 역사는 자유를 향한 발전입니다. 정신은 대립관계에 의하여 보다 더 잘 인식되는, 그 본질에 있어서 자유인 존재이며, 자신 안에 중심을 갖고 있으므로 아무것에도 종속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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