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겔에 대한 경쟁심과 질투로 자신의 개를 헤겔로 불린다는 아르투르 쇼펜하우어는 염세주의적인 철학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쇼펜하우어는 그의 철학보다는 이름으로 더 알려졌습니다.
쇼펜하우어의 일생
쇼펜하우어는 1788년 자유의 도시 단치히에서 부호 상인인 아버지와 작가 생활을 하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쇼펜하우어 자신은 인문학교에 가기를 원했으나, 그의 아버지는 아들이 상인으로 성공하기를 바랐던 터라 일찍부터 부모와의 갈등을 겪게 됩니다. 돌아오면 상업 교육을 마친다는 조건으로 2년 동안 유럽을 여행하는 도중 쇼펜하우어는 프랑스의 한 도시에서 갈레선의 죄수들이 겪는 고통을 보았습니다. 여행에서 돌아와 상업 교육을 받던 중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유산을 가지고 원하던 철학 공부를 시작합니다. 이때 대학에서 만난 스승으로부터 플라톤과 칸트를 공부하라는 권유를 받습니다. 1831년 베를린에 콜레라가 크게 유행했을 때 염세주의자인 그는 남부 독일로 피해 무사했고, 인기가 절정이던 헤겔은 콜레라에 감염되어 세상을 떠납니다. 자유주의가 탄압받는 상황 속에서 현실에 큰 환멸을 느낀 대중은 쇼펜하우어에 점점 동조하면서 그는 큰 명성을 얻고, 생전에 자신에 대한 대학 강의가 열리는 기쁨을 경험합니다.
염세주의자
쇼펜하우어의 까다롭고 비판적인 성격을 두고 전형적인 철학 교수의 원조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는 칸트를 제외한 모든 철학자를 비난했지만, 스스로는 인기 있는 철학 교수로 인정받고 싶어 했습니다. 모순된 쇼펜하우어의 성격과 염세주의의 원인을 사람들은 흔히 개인적인 배경에서 찾습니다. 그는 대부분의 철학자들과 달리 교양 있는 집에서 태어나지 않았고, 일찍부터 현실에 뛰어들어 상인 수업을 받은 덕분에 남보다 빨리 세상 돌아가는 법을 배운 상당히 예외적인 철학자입니다. 자신의 철학 논문을 비웃는 어머니와 평생 절연할 만큼 자존심 강한 그가 대중 앞에 허리를 굽히지 않은 것은 당연합니다. 그뿐 아니라 어린 시절부터 겪은 아버지의 우울증과 죽음, 불화가 잦았던 부모 사이나 프랑스에서 본 죄수의 고통은 그에게 힘든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런 경험을 아무런 여과 없이 그의 철학과 연결시킬 수는 없습니다. 사실 쇼펜하우어의 철학은 많은 부분에서 오해를 받고 있고, 사람들이 그의 철학적 주제를 모른 채 단지 그를 괴팍스러운 염세주의자로 기억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세계는 고통으로 가득 차 있으며, 우리 인간은 불행한 존재라는 그의 철학은 염세주의적인 것은 사실이지만, 이 주장은 단순히 삶에 대한 비관이라기보다는 본능적인 의지 앞에서 무력한 인간의 한계를 깊이 인식하는 데서 비롯됩니다. 이 세계가 통제되지 않는 비이성적인 의지에 의하여 움직인다고 본 그의 이론은 특히 프리드리히 니체의 실존철학과 지그문트 프로이트 심리학에 많은 영향을 끼칩니다.
이성은 의지의 노예
쇼펜하우어는 저서인 <의지와 표상으로의 세계>에서 의지의 철학을 전개합니다. 쇼펜하우어의 의지의 철학은 인식과 맹목적인 의지의 관계, 이 의지로 인해서 생기는 고통을 어떻게 극복하느냐 하는 문제를 중심으로 다룹니다. 이 세계는 알려는 의식을 가진 사람에게만 이해되는 대상이고, 알려고 하는 나는 주체로서 이 외부 세계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나의 주관적 활동을 동시에 함으로써 주관과 객관 모두를 포함해서 표상을 만듭니다. 즉 나의 주관적 인식과 세계라는 외부 대상이 만나서 표상을 이루어 내므로 주체인 나는 세계를 수동적으로만 받아들이지 않고, 능동적으로 이해함으로써 표상을 만들어 내는 창조자의 역할을 합니다. 사물의 근원으로서 의지는 비이성적이고 맹목적인 충동으로 시간과 공간에 상관없이 나타납니다. 인간의 이성은 이 의지를 관철시키는데 쓰이는 도구일 뿐입니다. 여기서 쇼펜하우어의 철학적 핵심을 볼 수 있습니다. 그는 거침없고 맹목적인 의지를 지금까지 이성이 차지했던 최고의 자리에 놓음으로써 이성을 의지의 노예로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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