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마누엘 칸트는 관념 철학의 기본 조건을 제시함과 동시에 계몽 철학을 완성했습니다. 그의 의지력, 엄격한 건강 관리, 철저한 시간 배정은 아무도 따라올 수 없을 만큼 남달랐다고 합니다.
평온했던 칸트의 인생
탁월한 강의와 연구로 엄청난 양의 학문적 업적을 남긴 그는 동프로이센의 수도인 쾨니히스베르크에서 태어나 한평생 그곳을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칸트는 그곳에서 대학을 다니고, 역시 그곳에서 대학 강사를 거쳐 교수가 되는 평탄한 삶을 살았습니다. 1770년에 교수가 되면서 본격적인 연구 작업을 시작하는데, 그의 문체는 지루하고 어렵기로 악명이 높았지만 강의는 상당히 재미있었다고 전해집니다. 1781년에 출판한 <순수 이성 비판>이 너무 어렵게 쓰여있어서 그의 친구 헤르츠는 끝까지 읽지 못하고 돌려보냈다고 합니다. 칸트는 1804는 뇌졸중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칸트의 철학
가까운 친구조차도 무엇을 연구하는지 모를 정도로 조용히 자기 일만 했던 칸트는 세계 철학의 역사에 하나의 큰 획을 긋고 새로운 전환점을 제시합니다. 그의 철학은 지금까지의 형이상학적 철학이 더는 의심의 여지 없는 명백하고 분명한 원리에서 불확실하고 애매한 것을 발견하고 그 원인이 무엇인가를 알려고 하는 데서 출발합니다. 칸트는 기존의 형이상학이 불확실한 이유를 인간 이성의 본성에서 찾아냅니다. 인간 이성은 사물의 드러난 현상 뒤에 있는 배후까지는 힘이 미치지 않으며 이 문제는 우리가 무엇을 아는가에 대한 문제로 정리됩니다. 우리의 이성이 아무리 뛰어나다 할지라도 경험적인 영역 밖에서 일어나는 일에 관해서는 알 수 없다는 주장입니다. 이 말은 우리가 이성을 통해서 대상을 다 알지 못하는 원인은 대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식하고 생각하는 주관인 내게 있다는 주장입니다. 지금까지 완전하다고 생각해 온 선천적인 이성의 인식 능력은 사실은 제한되어 있으며 이성 혼자의 힘으로는 대상을 다 파악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제 이성에 대한 새로운 설명이 필요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그의 <순수 이성 비판>의 핵심 문제입니다. 순수 이성에 대한 새로운 그의 주장은 행위하는 존재로서의 인간에 대해서도 큰 관심을 갖게 합니다.
칸트 철학의 영향
인식 이론과 행위 이론을 기초로 하는 칸트의 비판 철학은 서로 대립되어 전개되던 영국의 경험론과 대륙의 합리론의 문제를 한 단계 높여 하나의 종합적 체계로 만들었습니다. 뒤이어 민족주의자인 요한 피히테는 칸트의 사상을 보다 더 완성하려는 시도를 했고, 이로부터 독일 관념론이라는 철학적 사조가 시작됩니다. 1870년에서 1900년에 걸쳐 독일 철학을 지배한 신칸트주의는 칸트로 돌아가자는 구호를 외치며 하나의 오류도 없는 엄밀한 철학을 시도합니다. 엄밀한 철학을 기초로 하는 신칸트 주의 이론은 하이데거 등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또한 칸트의 파급 효과는 니체, 프로이트, 야스퍼스, 비트겐슈타인, 롤스 철학에서도 언급되며, 오늘날까지 계속해서 체계적인 담론의 중심 화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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