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4년 버클리는 런던 데리 대학의 학장이 됩니다. 그는 당시 미국 버뮤다에 대학을 설립할 생각으로 꽉 차 있었습니다. 버클리는 마침내 1728년 미국으로 가서 3년 동안 대학 설립을 위해 노력하다가 실패하고 돌아와서도 결코 이상적으로 대학 건설과 버뮤다를 잊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조지 버클리는 아일랜드의 남부에서 태어나 더블린에서 대학 공부를 했습니다. 졸업 뒤 성공회의 성직자로 생활하면서 자신의 철학적 관심에 따라 데카르트와 로크의 이론에 몰두했습니다. 그가 갖는 철학사적 의의는 로크에서 흄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새로운 시도에 있습니다. 버클리는 자신의 철학을, 지금까지 세상의 보통 사람과 철학자가 알고 있던 진리를 통일하고 이를 보다 더 밝은 빛 속에 드러나게 하려 한다고 말합니다. 이 진리의 첫 번째는 우리가 직접 지각하는 것이 실재한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직접 지각된 것은 관념이고 관념은 오로지 마음속에서만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 생각을 합친 것이 버클리가 내세우려는 주장의 핵심입니다. 버클리가 추구하는 철학의 방향은 실재론과 관념론을 통일하려는 것입니다. 버클리는 우선 관념이란 외부적인 것을 감각적으로 이해하는 것이라는 물질주의적 사고를 거부합니다. 그는 오직 관념만이 의식 활동의 직접적인 대상이 된다고 하는 데서 시작합니다. 버클리의 기본 입장은 사물의 존재는 지각된 것이고, 주체는 이를 지각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에게는 관념과 정신만이 실제로 존재하며, 물질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버클리는 정신과 관념을 구별하는데, 정신의 활동은 관념의 관계나 관념을 기억하고 확인하는 데 있습니다. 물질이 존재한다는 주장은 추상적인 관념이 있다고 생각하는 데서 비롯되는데, 이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봅니다. 버클리는 외부세계의 사물은 감각적이라고 해도 곧 물질적인 것은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또한 인간 정신에 의해 파악되지 않은 것이라 해도 다른 어떤 정신에 의해서 지각된 것이라고 말합니다. 버클리에게 사물이란 그에게 있어서 신에 의해서 지각되고, 인간의 정신에 의해서 생겨난 복합적인 관념입니다. 버클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외부 세계가 있음을 부인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가 인정하지 않는 것은 이 세계의 물질적인 성질입니다. 그는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는 그 사물이 실제로 있다는 것을 의심한 것은 아닙니다. 그가 부인하는 것은 바로 철학자가 말하는 물질 혹은 물질적 실체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어떤 것을 감각을 통해서 알게 되더라도 그것은 주관적이며, 우리가 알게 되는 것은 그것의 물질적 실체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로크가 주관적 합리론을 땅으로 끌어내려 인간의 실천적 문제를 다루었다면 버클리는 다시 하늘로 날아오르는 철학을 펼쳤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성직자였던 그가 신앙과 도덕의 편에서 철학을 다루고자 했던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버클리는 유물론에서 무신론의 원인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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