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구스티누스는 오랜 방황 끝에 크게 뉘우치고 돌아와 누구보다 더 종교적인 삶을 살았기 때문에 큰 존경을 받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쾌락과 향락을 즐겼던 그가 교회의 아버지로 거듭 태어나는 이야기는 성서의 ‘돌아온 탕자’에 비견될 만합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삶
아우구스티누스는 지금의 알제리에 위치한 로마의 한 자치 도시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자유롭고 유혹이 넘치는 세계적인 도시인 카르타고와 로마에서 고등교육을 받았습니다. 청년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러한 도시 생활 속에서 쾌락적 생활과 방탕한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그는 17세에 동거를 시작하였고, 수사학을 공부하던 시기에도 성욕 때문에 괴로워했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는 이러한 일을 저서인 “고백록”에서 뒤돌아보며, 자신이 겪었던 육체적 욕망에 대해 반성을 합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방황은 이런 쾌락 앞에서 약해지는 자신의 모습 때문이 아니라 정신적인 흔들림에서도 기인합니다. 그는 나중에 그리스도교에 귀의하는데, 그 이전에는 불을 숭상하는 마니교에 빠져 있었고, 깊은 회의에 빠져 방황도 했습니다. 32세의 아우구스티누스는 유명한 ‘밀라노 정원’에서 한 체험을 통해 그리스도교로 개종하는데, 당시 밀라노의 사상적 풍토는 신플라톤주의에서 그리스도교로 전환되는 과정이었습니다. 이 정신적 변화를 통해 아우구스티누스는 중세 철학의 아버지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됩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은 많은 고민과 반성뿐 아니라, 그의 철학적 내용을 정리한 것으로 중세 철학이 나아갈 길을 제시하는 중요한 저서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우리에게 진리를 얻기 위해 깊이 의심하라고 말합니다. 의심은 이성과 같이 깊은 사고의 본질이라는 것입니다. 또 의심을 통해서 우리 존재를 확인하게 된다고 말합니다. 더욱이 우리의 의심으로 인한 착각과 잘못된 판단조차 우리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증명한다고 합니다. 그는 이런 의미에서 진리를 얻기 위해 의심하는 노력이 있는 한 내가 잘못을 범한다 해도 나는 존재한다고 말합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의심은 무엇보다도 자신의 내면으로 향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찾아 헤매는 진리는 사실은 우리 안에 숨겨져 있는 것이며 밖으로 나가 봤자 헛수고라고 말합니다. 오랫동안 방황했던 사람으로서 그는 우리에게 간곡하게 호소합니다. 진리는 인간 안에 존재하니 밖으로 나가지 말고 자신으로 들어오라고 합니다. 그는 의지를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의지란 우리가 진실로 원하느냐의 문제이며, 결국 선택은 우리의 선택입니다. 어떤 것을 우리가 진실로 원한다면, 우리의 의지는 다른 모든 것을 거부하고, 이 한 가지 일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이렇게 해서 얻어지는 의지의 결실이며, 지식은 의지와 필연적인 관계는 아니라는 주장입니다. 이러한 의지는 무엇이든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는 절대적 자유로 이어지지는 않습니다. 절대 자유는 아주 먼 옛날에 허락되었던 은혜였을 뿐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아담이 이 절대 자유를 하느님의 뜻을 거역하는데 남용했기 때문에 그 후손인 우리에게는 악의 의지가 더 강하게 되었다고 주장합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아담의 실수 때문에 무한대의 자유를 더는 누리지 못하게 되었고, 죄와 악에 가까워졌다는 것입니다. 아담의 후손인 우리가 구원받을 수 있는 방법은 사랑을 통해서라고 말합니다. 하느님도 사람처럼 우리에게 사랑받기를 원한다고 합니다. 우리는 하느님에 관한 사랑을 통해 용서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은총을 통해서만 우리는 사랑에 대해 눈을 뜨게 되며, 하느님을 만나서 최상의 행복을 얻게 된다고 주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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