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은 언제나 현실 세계와는 한 걸음 떨어져서 자신의 고유한 사고 영역 속에 머물러 왔습니다. 삶의 현장에서 떨어져 있는 순수한 생각을 고집했던 철학은 칼 마르크스에 의하여 강력한 도전을 받게 됩니다. 그의 도전은 세계 정치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습니다.
망명을 거듭하던 궁핍한 삶
마르크스는 독일 라인 주 트리어 시에서 태어나 본과 베를린에서 법학을 공부합니다. 그 당시 그는 헤겔 주의자 모임에 들어갈 만큼 헤겔 철학에 열중했습니다. 일찍이 독일의 관념 철학과 초기 사회주의자인 생시몽과 푸리에의 이론을 접하기도 했습니다. 1841년 마르크스는 고대 유물론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습니다. 1842년부터 쾰른 ’ 라인 신문‘의 주필 일을 했지만, 언론 검열로 인해 1843년 일을 그만두게 됩니다. 그 해에 제니 폰 베스트팔렌과 결혼한 뒤 혁명의 중심지인 프랑스 파리로 이주합니다. 파리에서 마르크스는 프랑스의 사회주의자인 피에르 조셉 프루동, 미하일 비쿠닌, 하인리히 하이네 등과 교류하면서 그의 평생 친구인 프리드리히 엥겔스와 철학의 혁명적 실천을 위한 긴밀한 공동작업을 해나갑니다. 마르크스는 프러시아의 압력으로 1845년 파리에서 벨기에 브뤼셀로 이주합니다. 이곳에서 마르크스는 정치적 조직 활동을 하면서 1848년 엥겔스와 함께 <공산당 선언>을 작성합니다. 이 선언문은 공산당의 정치적 투쟁 문이며, 자신의 역사적 유물론 입장을 공식화한 것입니다. 브뤼셀에서 다시 추방된 마르크스는 영국의 런던으로 망명을 떠나서 많은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자신의 작업을 계속하다가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변증법적 유물론
마르크스는 헤겔을 변증법적 발전 체계를 뒤집음으로써 자신의 유물론을 탄생시킵니다. 그는 헤겔이 말하는 역사의 주체인 절대정신을 철저히 부정하고, 정신이 아닌 물질이 우리의 삶을 결정한다고 주장합니다. 정신이 물질을 지배한다는 헤겔의 철학을 뒤집은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먹고 입으며 무슨 일을 하느냐가 우리의 생각과 정신을 좌우한다고 보는 이 이론을 변증법적 유물론이라고 합니다. 물질의 양과 질도 서로 변증법적인 관계를 갖는데, 양은 질을 개선하고 질은 다시 양을 변화시킵니다. 인간의 역사도 비판과 현실 부정, 즉 투쟁을 통하여 발전한다고 주장합니다. 경제를 지배하는 사람이 사회를 지배하고 역사를 좌우한다는 입장입니다. 자본주의 체계 속에서 경제 활동을 통해 만나는 자본가와 노동자는 서로 다른 의식을 가질 수밖에 없고, 이들의 대립은 피할 수 없기 때문에 이 관계는 처음부터 잘못된 만남이라는 것입니다. 이들이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투쟁 관계로 만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잘못된 생산관계에 있다고 주장합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가는 자신의 육체 이외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노동자의 노동력을 통해서 더욱더 많은 자본을 모으게 되지만, 노동자끼리는 더 치열한 경쟁을 하게 됩니다. 이러한 생산관계는 인간 소외라는 가장 비인간적인 현상을 일으킵니다. 소외 현상은 결국 물질만능주의에서 절정을 이룹니다. 마르크스는 이러한 인간 소외 현상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필연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는 것이며, 종교도 예외가 아니라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마르크스는 종교를 아편이라고 비난합니다. 자신을 위해서 시작한 인간의 행위가 오히려 사람을 구속하고 억압하는 도구가 되는 소외 현상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혁명을 통해서 자본주의적인 생산관계를 무너뜨리고 공산주의적 생산관계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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